해외 이민에 대한 단상

해외 이민에 대한 단상
2015 Chrismas Eve

나도 한때 해외 생활을 하며 막연히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2015년 처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그곳에서의 경험은 이민이라는 꿈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얻은 교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호주의 낭만, 이민을 꿈꾸게 하다

호주에 살 때 청소나 식당 설거지 같은 일을 하면서도 퇴근하면 항상 여유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상에서 Sydney 달링하버를 건너 집으로 가는 풍경은 낭만 넘치는 삶이었다.

당시 내가 느낀 한국이 '열심히 해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곳'이었다면, 호주는 '무슨 일을 하든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곳'이라는 느낌이 컸다. 물론, 일이 끊기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호주 생활 동안 '한국 말고 다른곳에 정착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보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마주한 현실

이후 한국에서 여자친구를 만났고 함께 뉴질랜드에서 10개월간 '몸을 굴려보곤' 정말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정권이 바뀌면 이민법도 바뀐다. 단순히 장기간 체류하며 턱걸이식으로 이민 점수 채워서 영주권을 준비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

둘째, 이민은 삶의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내 경우,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전문직 이민 조건(소득)이 확 올라버렸다. 휴대폰 수리 기술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단순한 계획은 그대로 물거품이 됐고, 결국 워킹'홀리데이' 경험만 하고 돌아와야 했다.


전문성

이민법 변경 같은 외부 리스크를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전문성'이었다.

한때 '헬조선 탈출'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외에 나가도 내세울 전문성이 없으면, 몸이 팔팔한 젊을 때나 몸을 갈아가면서 생활이 가능할 뿐이다. 나이가 들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호주에서 만났던 일부 나이 많은 분들 중, 막연히 자기 삶을 찾겠다고 떠나왔다가 이도 저도 아닌 삶을 살며 입만 열면 한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영주권 받기가 워낙 어려우니 '영주권만 따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영주권은 그냥 그 나라에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친구의 예를 들어보자. 대학생 때 멕시코에서 인턴을 했는데, 주 업무는 관리소장과 현지 직원들 간의 통역이었다. 친구의 월급과 생활비는 전부 회사에서 지급됐다. 회사가 예상한 그의 전문적인 아웃풋은 그의 급여 + 통역 인턴 급여에 비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우리 회사 상무님도 국내 대기업 게임사 지인으로부터 해외 파견 오퍼를 받으시곤 말도 안통하는 나라에서 1년 넘게 관광하면서 일하셨다는 썰을 들었다.

어디서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특출난 전문성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민이란 개념은 그저 작은 언덕일 뿐이다.


실패가 내게 알려준 것

뉴질랜드에서 돌아오기 직전, '나도 전문직에 종사해야겠다. 제대로 기술을 배워서 이민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생각으로 국비지원 학원을 다니고 취업했고,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뉴질랜드 이민의 실패는 오히려 다행이다. 전문성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서비스직, 40대까지는 어찌어찌 버텼을지 몰라도 그 이후의 삶은 막막했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다 보니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복지가 많이 생겼고 지금은 그저 흐르는 대로 만족하며 산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닿는다면 이민이든 주재원이든 해외에서 생활하고 싶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 '기회'라는 건, 내가 내 가치를 높임으로써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